마리퀴리_여성 첫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마리 퀴리 (1867.11.7 ~ 1937.7.4)
아이들과 함께 리틀피플 빅 드림즈의 그림책을 읽고 있어요.
궁금했던 마리퀴리의 일생을 아이와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글은 마리아 이사벨 산체스 베가라 작가님이 썼어요.
마리 퀴리는 폴로늄과 라듐이라는 방사성 물질을 발견하고, 이를 이롭게 쓰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열심히 공부하던 어린 시절
마리퀴리는 1867년에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어요. 마리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고 배우는데 열심이었어요.
마리가 열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결핵을 앓다 세상을 떠났지만, 마리는 슬픔을 이겨 내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리고 공립학교에 들어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다
마리는 재능이 많고 공부를 잘했지만, 여자였기 때문에 폴란드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없었어요.
마리는 계속 공부를 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갔어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가정 교사로 일하며 공부할 돈을 벌었고, 파리 소르본 대학에 들어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땄어요. 대학에서 피에르를 만나 결혼도 했지요.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다
마리는 남편인 피에르와 함께 열심히 연구했어요.
1895년에 독일의 과학자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것을 보고, 마리도 특이한 물질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강한 빛을 내는 방사선 물질인 폴로늄을 발견했어요. 몇 달 뒤, '라듐'도 발견했고, 이들을 다른 물질과 분리하는 데에도 성공했지요. 1903년 마리와 피에르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어요.
최초로 노벨상을 두 번 받다
1906년, 피에르가 마차에 깔려 죽었어요.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잃었지만, 마리는 더 열심히 연구했어요.
마리는 남편이 맡았던 대학 교수 자리를 이어받아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소르본 대학 교수가 되었어요.
1911년에는 노벨 화학상을 받았어요.
한 사람이 노벨상을 두번 받은 건 처음이었지요.
과학으로 사람들을 돕다
마리는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몸속을 찍을 수 있는 휴대용 엑스선 촬영 기계를 만들어 차에 싣고 전쟁터로 갔어요. 덕분에 부상을 입은 군인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요.
전쟁이 끝난 뒤에는 퀴리 연구소를 열고 더 많은 사람이 라듐을 연구할 수 있도록 했어요. 라듐은 오늘날에도 아픈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어요.
팡테웅 신전에 묻히다
마리 퀴리는 1934년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마리가 죽은 지 61년 만인 1995녀 4월 20일에 마리의 시신은 남편 피에르 퀴리의 시신과 함께 파리 팡테옹 신전으로 옮겨졌어요. 팡테옹은 프랑스의 위인들만 묻힐 수 있는 국립묘지예요.
여성이 팡테옹에 묻힌 건 처음이랍니다.
마리 퀴리는 연구소를 세우고 죽을 때까지 초대 소장을 지냈다. 그 후 딸 이렌이 3대 연구 소장이 되었다.
과학자가 된 큰딸 이렌은 마리와 마찬가지로 방사능 노출이 원인이 되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둘째 딸 이브는 작가가 되어 어머니인 마리 퀴리의 전기를 썼다.
- 과학 선생님 프랑스를 가다 책 본문 내용
퀴리부인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즐겁고 재미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또 더 멋진 여성을 소개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