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칼로_20세기 최고의 멕시코 여성 화가
오늘은 프리다 칼로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이분 이름은 처음 들었어요.
화가라는 것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프리다 칼로(1907.7.6 ~ 1954.7.13)
소아마비에 걸린 프리다 칼로
프리다칼로 는 1907년에 멕시코 코요야칸에서 태어났어요. 여성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가늘어졌지만, 개의치 않고 씩씩하게 자랐어요. 공부도 잘해 멕시코 최고의 교육기관이던 국립 예비대학에 들어갔지요.
자화상을 그리며 보낸 시간
프리다는 열여덟 살에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어요. 서른 번도 수술을 해야 했고, 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지요. 프리다는 병원에서 지내면서 공부 대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주로 자화상을 그렸어요.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
프리다는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 국립 예비학교에 다닐 때 벽화를 그리는 에고를 보고 존경하게 되었어요.
훗날 프리다는 자신의그림을 가지고 디에고를 찾아갔고, 1929년에 둘은 결혼을 했지요. 하지만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어요.
뉴욕에서 열린 첫 번째 전시회
1938년, 프리다는 뉴욕에서 첫 단독 전시회를 열었어요. 교통과 슬픔을 표현한 프리다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어요.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칸단 스키, 마르쉘 뒤샹 같은 유명한 화가들이 입을 모아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칭찬했지요.
고통을 예술로 만든 화가
이후에도 프리다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어요.
1953년 멕시코에서 <프리다 칼로 기념전>이 열렸을 때 침대에 누운 태 구급차를 타고 전시장에 가야했지요.
그래도 프리다는 계속 그림을 그렸어요. 고통을 이겨 낸 프리다의 그림은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요.
국보가 된 그림들
프리다는 폐렴을 앓다 1954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프리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세상을 떠난 뒤의 일이에요.
화려한 색상과 멕시코 문화가 담긴 작품은 수백만 달러어 팔렸지요. 1984년에 멕시코 정부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국보로 지정했답니다.
- 위의 내용은 <리틀 피플, 빅드림즈> 전집에서 <프리다 칼로>의 일생을 적은 글입니다.
제가 이 전집을 읽으면서 갑자기 프리다 칼로를 더 알아보고 싶어서 다른 책들도 한번 찾아보았어요.
20세기 최고의 여성화가로 평가받고 있더라고요.
<지도로 보는 세계미술사>라는 책에 따르면 " 프리다 칼로는 그녀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인생의 고통은 프리다에게 강력한 창조력을 부여해 주었고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감정을 캔버스에 쏟아부었다. 그녀는 리베라와의 결혼으로 인한 분노와 상처, 유산의 아픔, 고통사고에 따른 육체적 고통 등을 림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 고통, 성, 죽음과 출산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를 그렸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의 고통을 표현한 그림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평가했어요.
상상을 그린 것처럼 사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상상이나 꿈이 아닌 자기의 신체적 고통과 마음의 아픔을 표현한 것이지요. 게다가 서양 미술이 아닌 마야나 아스 테커 같은 신비한 문명을 지닌 멕시코 전통문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왜 자화상을 그렸나요?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로 다시는 걷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들을 만큼 크게 다쳐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어요.
프리다는 그림을 그리며 힘겨운 시간을 이겨 냈는데, 다른 건 볼 수 없어 천장에 거울을 걸어 자기 모습을 보며 그림을 그렸지요. 이후 걷게 되었지만, 고통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마음의 아픔까지 늘어났지요. 프리다는 자기가 겪은 몸의 고통과 마음의 아픔을 주제로 자화상을 그렸답니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모습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희망을 품고 있을까요.
힘들어도 용기를 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