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은 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예스 24에서 광고하는 화면을 보고 읽어보면 괜찮을 것 같아서 유심히 살펴보다가 오늘에서야 읽게 되었다.
15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이다.
학생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인생의 지난날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큰 고통도 없었던 무던했던 삶이지만, 어찌 보면 가난하고 괴로웠던 과거를 지나온 것 같다.
지금은 결혼과 육아를 하면서 현실을 지내고 있다.
내 인생에 대한 포부도, 궁금증도, 걱정도, 두려움도 없이 그냥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지금이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마음이 먹먹하면서 눈물이 났다.
치쿠와 노든이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각자의 바다로 나아가는 인생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려오는 것 같았다.
"너는 이제 어떻게 살 생각이야?"라고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지금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의 바다는 어디일까?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어느 순간부터인가 치쿠는 '우리'라는 말을 많이 썼다.
노든은 알에 대해 딱히 별 관심은 없었지만
'우리'라고 불리는 것이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노든과 치쿠와 알은 걷고 또 걸으면서 많은 것을 함께 보았다.
온통 모래뿐인 언덕을 보았고,
가시가 촘촘하게 박힌 덩굴나무가 얽혀 있는 길을 지나가기도 했다.
노든의 몸통보다 굵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리 잡은 땅을 본 적도 있었다.
까맣고 작은 개미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좁은 구멍을 들여다보기도 했고,
별이 빛나는 더러운 웅덩이를 발견하기도 했다.
걷다가 지칠 때면,
날개에 물방울이 맺혀서 잠시 쉬고 있는 잠자리와 함께 숨을 돌리기도 했다.
노든은 목소리만으로 치쿠가 배가 고픈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발소리만으로 치쿠가 더 빨리 걷고 싶어 하는지 쉬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우리'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노든에게 말했다.
"노든 복수하지 말아요. 그냥 나랑 같이 살아요."
내 말에 노든은 소리 없이 울었다.
노든이 울어서 나도 눈물이 났다.
우리는 상처투성이였고,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되었지만
복수를 할 수 없는 흰바위코뿔소와
불운한 검은 점이 박힌 알에서 목숨을 빚지고 태어난 어린 펭귄이었지만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

축축한 모래를 밟으며 나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내 앞의 바다는 수도 없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노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 노든은 나를 알아보고 내게 다가와 줄 것이다.
코뿔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른 펭귄들은 무서워서 도망가겠지만,
나는 노든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코와 부리를 맞대고 다시 인사할 것이다.

매일이 힘든 인생이지만
'우리'라는 버팀목이 있다면 각자의 인생을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각자가 원하는 바다로 멋지게 살아내길 바라본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혹은 어른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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